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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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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팠다. 

아침엔 뭘 먹었더라. 베이글이었다. 냉장고에 피넛 버터가 다 떨어져버린 나머지 피넛 버터도 없이 젤리만 먹었다. 지긋지긋한 포도맛이었다.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컹물컹한 점액질에 절로 인상이 찌푸러졌지만 한 봉지에 이 달러 이 십 오 센트짜리 베이글은 가격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실망할 가격도 없었지만 말이다. 

집 안 가득히 전자파를 흘려대며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텔레비전 속에서는 뉴스가 진행 중이었다. 브루클린에서 트럭이 전복된 것, 두 명이 사망한 것, 멋모르는 꼬맹이가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한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언론은 강물에 바위가 깎이듯이 지나가기 마련이고 아무리 강한 풍파도 표면 위에 제 이름을 세기진 못한다. 바위는 언제나 매끈했다. 

그는 조금 슬펐다.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아팠고 그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 같아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제 인생의 방관자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벤 삼촌의 기일을 챙기지 않게 되었던 건. 메리 제인의 눈에 깊게 패인 걱정보다 불신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메이 숙모가, 예전 같지 않으셨던 건.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다이내믹함에 몸을 맡기고 나니 속에 들어찬 건 전부 빠져나가 버렸다. 물결치는 급물살처럼 전부 그의 손가락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잡지 못했다.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 그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베이글을 끝냈다. 손에 잡힌 버터 나이프가 제 눈에 비쳐 조용하게 아우성쳤다. 이딴 거 아프지도 않다. 그는 죽지 않겠지만 그의 마음도 괜찮을 진 모른다. 스파이더맨은 언제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겠지만 그도 그럴진 모른다. 그는 살아남겠지만 그의 가슴은 그럴 수 없다. 

스파이더맨은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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