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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20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눈을 떠보니 제 자신은 없었다. 

뻑뻑하기 짝이 없는 눈꺼풀을 연방 깜박였지만 제가 보고있는 이 백색 천장은 전혀 생소한 모습이었다. 기억이 마치 누가 일부러 분칠을 해놓은 듯 뜨문뜨문했다. 제가 누군지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는 뻐끔뻐끔, 입을 움직여 보았지만 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는 버려진 것인 듯했다. 주변을 가득 채운 요상하고 위압감 도는 기기들.

그곳은 병실이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링거줄과 제 몸에 붙은 치렁치렁한 의료기기를 전부 떼어내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를 벗어나자마자 “삐이- 삐이- 삐이이이익,” 거리며 기다렸다는 듯 울려대는 그 소리조차도 너무 두려워 두 눈을 질끈 감고선 양 귀를 감쌌다. 심장 박동 측정기는 담담히 잔 주름 하나 없이 곧은 일직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뛰기를 멈춘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 되는 것인가.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죽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것만은 싫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기에 이렇게 죽기에는 그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너무나 두려워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그는 벽면에 붙어있는 자동 재세동기를 거칠게 떼어내 필사적으로 제 가슴에 대었다. 병원복 단추를 전부 풀고 맨가슴에 문대었다. 차가웠다, 그렇지만 차갑지 않았다. 아니 충분히 차가워야할 온도였지만 별로 차게 느껴지지 않은 건 그의 맨살이 더욱 강한 냉기를 품고 있었기 때문임이라. 당황한 그의 맨가슴에 수차례 전력이 흘렀다. 쿠웅, 쿠웅. 심장이 손상될지도 모르는데, 정확히 어디에 갖다 붙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차마 떼어내지 못한 건 그저 살고 싶은 자의 발악일 뿐이었다. 

그러나 일말의 기대에 젖어 슬그머니 올려다본 화면 속 일자선은 변함이 없었다.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애가 탄 손길로 다시 기기에 손을 뻗었다. 요령없이 그저 패드를 가슴에 문댈 뿐인 그의 복부 위로 매우 강력한 전력이 흘러들어왔다. 덜컹-! 으드드드득, 살이 다 떨렸다. 왜, 왜 안되는 거지? 복부에 남은 화상 자국을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문지르며 다시 패드를 붙였다. 가장 세게, 그래야만 해. 폐를 뭉그러뜨리는 아픔에 태아처럼 웅크린채로 입술을 짓이기며 그는 전류 버튼을 향해 슬금슬금 손가락을 내렸다. 툭, 손끝이 미끄러지듯 버튼을 내리고, 곧 내장을 파열시키는 듯한 엄청난 전류가 그를 감싸안았다. 덜-컹! 으드드드드드- 덜컹! 으드드드드득- 덜...컹! 으드드... 우둑, 우두둑. 손마디가 전부 반대로 꺾이고 목구멍에선 짭짤한 피 맛이 났다. 

정말 이젠 죽을 것 같다 느꼈을 때, 전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게 한 순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압박하는 전류에 맞춰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아랫배가 찌익 반으로 갈라졌다. 겁에 질려 낯빛이 새파랗게 변한 그는 제 피 한 방울 없이 찢긴 배에 손을 갖다대려 했지만 곧 그 속에서 역류하는 물길처럼 치솟은 검은 액체에 황급히 치울 수 밖에 없었다. 스멀스멀 아주 길고 두터운 장어처럼 움직이던 그 검은 줄기는 아직도 격렬히 떨리고 있는 재세동기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꿰뚫었다. 

털썩. 반으로 갈라진 재세동기는 털털거림을 멈추었고 즉시 그 검은 줄기 또한 그의 열린 배 속에 되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 속에 존재하는게 당연했다는 듯이.

꿀렁꿀렁, 제 찢긴 배가 다시 붙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천장으로부터 공허한 시선을 돌렸다. 천천히 제 판판한 아랫배를 매만지며 그는 두려움에 벌어진 입을 어찌하지 못하고 쓴웃음만 지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암갈색 동공이 공포에 휩싸여 흔들렸다. 정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배는 아주 말끔히 붙어있었다. 더듬더듬 갈라졌던 그 부근을 훑었지만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재세동기가 만들어 내었던 화상 자국 까지도.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병실의 작은 창은 한껏 해사한 햇빛을 드리우고 있었지만 오직 제 뒤에만 그림자가 붙지 않았다. 한평생 따라다닐 줄만 알았던 영혼의 거뭇한 이면이, 심지어 저 침대에도 있고 조각난 재세동기에도 있고 침대 옆 빈 음료수 캔에까지도 있는 그것이 제게만 없었다. 

정신이 너무 멍해서 과연 제가 보고 있는 이것이 현실이 맞을까 행복한 착각도 잠시, 씁쓸하게도 그건 그의 인생이 맞았다. 그는 이쯤에서 끝이었던 것이다. 너무 부질없었다. 구질구질했고 덧없었다. 그럼에도 살고 싶어 미칠것 같은 제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그는 조금 울었던 것도 같았다. 병원복 소매가 전부 축축하게 젖어들어갈 정도로 울었다. 애 처럼 굴긴 싫었지만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무엇을 입 밖으로 내고 있는건지 분간조차 안 될 정도로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Jesus,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계획대로였다면 일단 넌 지금 스타크의 곁에 있어야 했다고.”

전반적으로 빨갛고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왔다. 잠깐, 여기 몇 층이지? 놀라 벌떡 일어선 그를 가볍게 저지하고 남자는 그를 잡아끌었다. 

“시발 조금 늦었는데 별 상관은 없겠지. 좆까라해. 그래도-“

남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슬슬 새는 입새엔 줄줄 흐르는 피가 가득했다. 

“살고 싶지?”

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대답이 없는 그를 내려다보며 빨간 스판덱스의 사내는 피식 웃었다.

“살 의지가 없다고 해도 선택권은 없어, 애기야. 내가 지금 너를 살릴 거고 넌 닥치고 살아가기만 하면 돼. 존나 간단하지?”

그래도 널 살리기 위해 내 명줄을 조금 줄이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진 말어. 

거기까지 말하고 남자는 돌아버린 얼굴을 하고 조금 웃었다. 그런 남자를 응시하던 그는 분위기에 휩싸여 조금 웃었던 것도 같다. 허나 그 눈은 피폐하게 얼룩져 있었다. 

“자, 이제 가자. 베이비,”

그의 손목을 붙잡은 남자의 큰 손을 그는 툭 쳤다. 남자는 그를 살린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뒤돌아 눈을 마주친 남자는 마치 오작동하는 라디오 같던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답했다. 시선을 회피하는 그는 조금 흐트려져보였다. 

“그게...어, 내가 그러니까... 불가피한 실수 때문에 너를 죽인 것 같아서 그래. 근데 괜찮아! 이 데드풀이 다시 되돌려 놓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살어. 그리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안심되었다. 

“나는 뭐야..?”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 혼자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하지만 누군가의 작은 도움 하나만 있다면 조금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너는 스파이더맨이야.”

그는 용병의 손을 맞잡았다. 한 개의 의문이 풀렸다. 

그는 스파이더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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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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