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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8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목요일 정오라고는 믿기지도 않을 어마어마한 인파에 떠밀려 지하철에 오를 염두가 들지 않아 부족한 지갑 사정도 무시하고 리프트(택시)를 불렀다. 차창에 비추는 휘황천란한 마천루를 지나 언제나 바글바글하고 분주한 다운 타운도 지나 조금은 초라한 동네에 조금은 초라한 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차가 멈추자 마자 잔뜩 긴장한 채로 이십 불짜리 지폐를 던져준 쟈니는 피터를 끌고 차에서 뛰쳐나왔다. 택시 기사의 짜증 반 황당한 반 섞인 크락션 소리가 무서워 쟈니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다만 피터가 조금이라도 손아귀를 푼다면 마디를 따라 영영 흘려가버릴 사막의 모래라도 되는 양 힘을 풀 수 없었다. 그만큼 쟈니는 절박했고, 그에 비해 제 품 속의 형이란 자식은 평소보다 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몽롱한 눈을 할 뿐이었다. 모르겠는 게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약 그 할일 없는 억만장자의 손에 피터를 넘기게 된다면, 앞으론 평생 보기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흐느적 흐느적, 피터는 쟈니에게 반쯤 기댄채로 발을 끌었다.

“피터, 제대로 걸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거짓말이다. 주변은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휑한 주차장일 뿐이었고 허나 봤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 세상을 이상하게 만들 별난 놈들은 그 동네엔 넘쳐 있었다.

쟈니는 숨결 밑으로 차오르는 찝질한 이물질을 그저 입안에서 굴렸다. 뱉어내어야 하는지도 그대로 삼켜야 하는지도 모르는채로 요령없이 그렇게 품고만 있을 뿐이었다. 분출구를 찾지 못한 짜증은 애먼 제 형에게로 실렸다.

“진짜, 좀! 형이 걸어요. 나도 이제 힘들다고..”

“응.”

“자, 나는 이제 안 잡아줄 거니까. 기대지 마요.”

“응.”

막연하게 ‘응’ 이라는 성의없는 대답만을 흘리는 피터에 쟈니는 푸후, 한숨을 쉬었다. 형의 눈은 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선은 저 멀리, 아주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아파보였다.

“...됐다. 그냥 됐어요.”

“응...”

털썩, 손바닥만한 주차장의 시멘트 바닥에 나란히 주저앉은채로 피터와 쟈니는 서로 다른 곳을 응시했다. 

고개를 든 쟈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뉴욕의 심장에서 밝게 빛나는 스타크 타워였다. 약간은 주저하며 쟈니는 피터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피터의 손 또한 소스라치게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 시간 만큼은 조금 따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 

몇차례 저를 나직히 부르던 쟈니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서야 피터는 얕은 목소리로 웅얼거릴 수 있었다.

“응.” 

암갈색 도토리 같던 눈물 젖은 눈동자는 의아함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쟈니. 지금 기분이 너무 이상한데, 혹시-

쟈니는 피터의 입을 살포시 막으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아니야. 형, 이제 일어나요.”

피터는 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쟈니의 친절을 무심하게 거절하고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괴이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저를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마치 제 것이 아닌 하의를 억지로 꿰차 입고 물놀이를 하도록 강요받는 것 같았다.

~

“헤이, 쉬클라...”

은근한 기색을 띄우며 웨이드는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웨이드는 제 두뇌 상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또 짜증을 내고 있는 아내 쉬클라를 달래느라 대낮부터 진땀을 빼고 있었다. 몇일 전부터 웨이드는 거실에서 잠을 자야했다. 쉬클라와 섹스를 하지 못한지도 어느덧 한 달이나 되어갔고 물론 그녀와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체 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욕구 불만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됐어, 그만둬.”

그녀의 연보라색 파자마 자락이 흩날리는 것을 웨이드는 다소 싱겁게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쉬클라는 더 이상 제 앞에서 끝내주게 섹시하던 벡리스 드레스를 입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응? 난 자기밖에 없는 거 알잖아.”

하지만 쉬클라의 눈빛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뭔가 단단히 삐진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제 얼굴을 보고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리가 없었다. 

잘생겨진 웨이드 윈스턴 윌슨을 보고서도 말이지. 얼굴에 손을 가져대 대어 보았다. 이 매끈하고 말끔한 살결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당신 예전 같지 않아.”

한참이나 몸서리쳐지는 시선을 보내오던 쉬클라가 실망스럽단 듯이 입을 열었던 때였다.

“..당연하지. 사람은 원래 끊임없이 변태하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요새 시기가 시기이기도 했고 말야.

“아니, 그런게 아니야. 당신, 재미없어졌어.”

뭐라고? 천하의 데드풀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위트가, 이제는 한물 갔다는 소리야? 웨이드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왜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거야?” 

그리 물어오는 쉬클라의 눈가가 답지 않게 붉었고, 그 검은 동공 속에 숨겨진 순수한 애정을 찾아내는데에는 평소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다.

“그야...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게 끝이었다. 쉬클라의 낯빛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어렵사리 찾은 애정 또한 정신을 차려보니 손끝을 스쳐지나가 회생불가능이 되어 있었다. 멍청한 웨이드, 멍청한 데드풀. 이 시간 그는 세계 병신 대회 대상을 직접 웨이드 윌슨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데드풀이란, 고작 그 정도 뿐이었구나.”

쉬클라는 고개를 돌렸다. 웨이드는 무언가 변명을 해보려고 했던 것도 같지만, 아니 애초에 그가 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여하간 쉬클라의 마음을 돌려보려 몇 마디를 더 지껄였던 것 같기도 했다. 결국 필요없는 것일 뿐이었고 상황은 악화되면 더 악화되지 나아지진 않았다는 것도 다름이 없었지만 왜인지 웨이드는 조금은 다행스럽게 여겼다. 조금은 미안해했고, 그랬기에 조금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모르겠다.

젠장, 도저히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한 생물이 된 건지 모르겠다고.

단지 간간히 그의 든 거 없는 가슴에 나타나 머릿속을 잔뜩 헤집고 지나가는 팔 년 전의 그 아이가 조금 더 자주 떠오를 뿐이었다. 마치 녹슨 냉장고에 요령없이 찰싹 달라붙어버린 자석쪼가리처럼 뗄레야 마땅한 가치도 없어 가만히 놔두었던 것을, 어느새 이렇게 커져버려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낭비시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요령없이 달라붙던 것 만큼이나 요령없이 컸구나. 그는 가끔 임산부를 앞에 두고선 고집스럽게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야 마는 중년 남성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어딘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던 그 감정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소리다. 

그만큼 그는 요새 존나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없어 취미로 동네 치미창가 레시피를 연구하고 그 미묘한 맛을 분석하는.

존나 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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