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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7

터벅터벅. 

줏대 없는 발걸음은 마땅한 행선지도 없이 제멋대로 사경을 해메고 있다. 토니는 요 근래 제가 평소답지 않다는 소릴 좀 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가 어딘가 돌았지 않았고서야 가뜩이나 업무가 넘쳐나는 목요일 오전에 무슨 가루마냥 부스러진 어벤져스 구본부에 발길을 들이진 않았을 것이니까.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최근 요상하고 독특한 미적 취향에 눈을 떠서 뼈대도 안 남은 폐허에서 산보를 즐긴답니다- 웃기지도 않았다. 그런 취향 따위 없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떠보니 뜬금없게도 그곳이 떠오르길래 한번쯤 발걸음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 대목부터 이미 정상이 아니었지만.

인간이란 참 단순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정상’과 ‘비정상’ 의 범위를 암묵적으로 정하여, 그 카테고리에 맞는대로 분류하고 싶어한다. 세상엔 말로써 설명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들에게 그것은 세상의 결함이었다. 하지만 요새 토니는 그 흑백대비적인 분류표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종종 깨닫는 것 같았다. 토니가 평생을 의지하며 살았던 그 분류표에 말이다.

달칵,

토니는 그의 랩 서랍을 닫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하긴 그른 것 같았다. 오전의 작살난 구본부에서의 그 피터와 똑 닮은 남자. 그가 제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을 때, 토니는 근 몇년간 받을 수 없던 포만감을 느꼈다. 소스라치게 소름끼치는 만족감을 그는 느꼈던 것이다. 어딘가에서 아주 수상한 기색이 몰려오는 것을 토니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냥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걸로 치자고. 

토니는 랩실의 문을 나서자마자 그의 자켓에서 휴대전화를 끄집어내어 꺼져있던 전원을 켰다. 비록 져가고 있더라도 아직까진 명실상부 미국 최고 갑부의 폰 답지 않게 산산조각으로 깨져있는 액정은 불이 난듯 수십개의 알림을 띄워대고 있었다. 모두 똑같은 수신인. 

“하아...” 

토니는 한숨을 쉬었다. 허나 미워할 순 없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지쳐버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토니는 고뇌 반, 싫증 반 섞인 손길로 화면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는 그 아이를...

아직 사랑하는가.

~

“Fuck,” 

토니는 괜스레 초조했다. 

“무슨 일 있어요, 보스?” 

“...없어.”

조금 뭉게는 감이 있는 토니의 대답에 해피는 어께를 으쓱이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간간히 백미러로 흘끔흘끔 토니의 낯빛을 확인하던 해피는 눈치껏 악셀을 조금 더 밟았다. 

왜 그러지. 오늘따라 웬지 해피를 좀 더 닥달하게 되고 최대시속 삼백 킬로짜리 세단이 그닥 세게 밟히는 것 같지도 않고 교통체증은 왜 이리 심한 건지. 누가 나이를 먹으면 만사에 대체적으로 자비로워진다고 했던가. 그게 아닌 걸 나이가 한 쉰 살 쯤 들어 알았다. 나이는 ‘먹는’ 것이니까 짜증도 먹는 것이고 토니 같은 경우엔 그 둘을 너무 많이 먹어버린 바람에 참을성이란 걸 먹을 배가 부족했을 것이라고 그는 자기합리화했다. 

최대시속 삼백의 느린 세단의 바퀴가 굴러가는 줄도 모르게 굴러가다가 더 이상 정말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토니는 성급하게 차 문을 박차고 나섰다. 제 앞에 펼쳐진 두번째 스타크(겸 어벤져스) 타워가 그 고등어빛 자태를 뽐내며 곧게 솟아있다. 구글 지도와 사진기를 들고 정문 앞을 바글바글 둘러싼 여행객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면서 토니는 세삼 제 -두번째- 완성품의 위력을 실감했다. 완공된 이래로 매일 같이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페퍼.”

“안녕, 토니.” 

지극히 사무적인 인사를 나누고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둘은 한 몇초간 침묵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기안 없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어벤져스 타워의 엘리베이터가 빠른 건 아니었다. 기어이 페퍼는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토니 스타크와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경우에 이렇게 무안한 기류가 퍼지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보는게 좋을 거예요. 물건 깨지는 소리도 조금 들리더라고요.”

페퍼는 토니의 미간에 한 겹 더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제 2 스타크 타워의 엘리베이터가 기분 탓인지 그 날 따라 다소 털털대며 열리면, 늘 기다리고 원하던 그가 토니를 마주한다. 얼마나, 바랐는가. 하지만 늘 그랬듯 가장 애정하는 안락 의자에 몸을 기댄채로 씨익,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는 마지막으로 봤던 반나절 전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젊어보이는 브루넷 머리칼은 말라붙은 피 딱지에 헝크러져 있었고 입가는 조금 터진것인지 피가 고여있었다. 심각하게 흐트러져 있는 펜트하우스의 꼴을 지친 눈으로 응시하며 토니는 마른 세수를 했다. 그는 토니를 실망시키는 데에는 전혀 실망을 주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가, 그리고 과거의 토니 자신의 즐겨하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난 변함없이 그 이하일 거라고. 요즈음 만큼 그 말이 불쾌하게 다가온 적도 없었다. 

“뭔 일이야?”

애석하게도 그는 지지리도 능글맞았다. 토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 일이라니, 너야 말로 이건 너무 심하잖아.”

“아니, 뭐. 난 그냥 토니가 평소보다 좀 일찍 왔길래 그랬죠.”

시치미를 뚝 떼며 토니를 향해 찰랑찰랑 와인병을 흔드는 그에게로 토니는 다소 딱딱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서 병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채고서야 토니는 평소보다 더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을 어떻게 수습해 볼 걱정을 할 수 있었다. 터키 대리석 바닥은 깨진 꽃병과 그 잔핵물로 수놓아져 있었고, 밤 잠을 설치는 그를 위해 토니가 손수 제작한 침대보는 저 멀리 던저져 있었다. 짧게나마 독특한 수집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그를 위해 토니가 구해온 수많은 진귀한 보석들과 진열품들은 손에 들어오는게 쉬웠던 만큼 빠져나가는 것도 쉬웠다. 단체로 크리스탈 퍼즐 조각이 되어있었다는 소리다.

“...수십통 연락하고 그 난리 피운 건 네가 먼저라는 걸 잊으면 안되지, 피터.” 

나는 무슨 일이 났는 줄 알았어. 얼마나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지 알아?

“그건 늘 하던 거였잖아요. 괜히 의미부여할 성격도 안되면서.”

그를 고대했던 것보다, 그를 사랑했던 것보다 상처를 더 숱하게 입었지만 여전히 토니는 그를; 피터를 떠난다는 생각 따윈 일체 할 수 없었다. 미련하다면 너무나 미련했다. 그는 피터를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유리병을 깨트리면 어쩌려고 그래! 미쳤군. 다칠 수도 있었어.”

“과보호하는 척 하지 말아요.”

하아... 토니는 괴로움에 지끈거리는 정수리를 감싸안았다. 피터는 야속하게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예의 그 순진했던 웃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면 아무것도 못할 줄 알고.

그렇다, 토니가 그 웃음 앞에선 아무리 부글부글 끓어대던 분노라도 저절로 삭힐 수 밖에 없는 것을 피터는 잘 알고 있었다.

“토니.. 새 슈트 만들어주면 안돼요?” 

그세 또 눈을 호선으로 접으며 웃음을 짓는 피터에 토니는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한때는 서로 죽고 못사던 적도 있었는데.

글쎄, 요즘 들어 그는 마치 그가 추억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토니는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무작위적으로 대입하여 현실을 부정하러 애쓰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래나 저래나 확실한 것은, 피터를, 아니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그는 이젠 나이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조상님 환장하실 말이네. 토니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울 수 밖에 없었다.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재미가 없어요. (심각) 다음편엔 뭘 좀 터트러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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