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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6

16.

머뭇대는 둘의 모습과 그 주위의 공기를 먹어버린 어색한 기류는 그저 맞지가 않았다. 도대체 왜? 저 둘은 접점이 없었어야 당연한 자들이다.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라니. 오십대의 억만장자와 이십대 후반의 무직 히키코모리. 어벤져스의 히어로 아이언맨과 그들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한낱 일반인 형. 당황스러웠다. 혼란스러웠고, 피터를 정말로 잃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정신을 차린 쟈니는 피터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 끌고 있었다. 피터를 모르던 사람이었다면 그저 애뜻하게 보일 눈빛을 띄운 토니 스타크에게서 멀어지도록.

확 잡아 채던 쟈니의 손길에 피터는 저항했다. 반항했고, 그저 남일 뿐인 토니 스타크보다도 가족인 쟈니를 멸시했고, 날이 선 시선으로 사납게 노려보았다. 

"...씨발. 이거 안 놔?"

다시 말하지만, 피터는 쟈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안 놔."

쟈니는 똑같이 피터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한다면야 뭔들 못하겠는가. 다 피터를 위해서였다.

"놔!"

피터는 여지껏 쟈니가 본 그의 모습 중에서 가장 차가워 보였다. 발로 차고 주먹질하고 버둥대며 쟈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버둥대는 피터를 쟈니는 꽉 끌어안았다. 피터의 시선은 이 상황에서도 토니 스타크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도대체 무엇이라고 끝없이 그립고, 애절하고, 아쉽고, 아프냐.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고통을 주는가. 토니 또한 피터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세겨두고 있었다. 그 둘의 사이에 끼어든 쟈니는 눈치없는 외부인이었다. 

"안돼...못가."

그렇지만 형을 위해서라면 눈치없는 이방인 역할 하나 못하리. 발악하듯 소리지르며 저항하는 자뭇 안쓰러운 피터의 모습에도 쟈니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았다. 



“아...아.” 

피터는 절박하게 붙잡힌 손을 뻗어 허공을 갈랐다. 안타까울 정도로 애처롭게 물기진 피터의 동공은 토니가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올 시 하릴없이 그 눈물을 쏟아부어낼 것만 같았다. 피터의 가슴 속에서 액체화 되어 끊임 없이 흘러내리는 사랑의 뜨거운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식을 줄을 몰랐다. 아니, 기억은 사그라들었어도 가슴은 진정될 줄을 몰랐다. 끊임없이 두방망이질치는 이 미련한 놈의 덧없는 심장은, 상대의 마음이 쪼그라든 담배 꽁초마냥 식고도 남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다른 맘을 품게 되었다. 불을 끄고 싶었지만, 눈을 떠보니 온통 허한 세상에서 혼자 남은 봉화는 정녕 누구에게 소식을, 아니 이 연모하는 마음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하..하. 지긋지긋한 인연이군. 아니, 악연인가.”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쟈니의 손에 붙잡힌 피터는 그저 주르륵 눈물을 흘려낼 뿐이었다. 흐르는 눈물과, 흐르는 기억들. 이제는 너무나 삭아버려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추억의 향연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를 이렇게 상처주는가. 잊을 만하면 다시 알음알음 떠올라 그 손아귀에서 벗아나질 못하게 하는가. 상대방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희망이란 반란분자를 버릴 수 없게 하는가. 무려 팔 년 만의 재회인데, 왜 제 앞의 저 옹졸한 사내는 조금 놀란 기색이 전부일까. 왜 변함없이 사랑에 인색한 것인가.

바람이 그 방향을 다섯 번째 쯤 바꾸었을까. 서늘하게 날아오는 봄 바람은 하늘하늘한 벚꽃을 싣고 왔지만 그 뿐이었다. 꽃잎의 이면에 늘 달라붙던 그 그림자가, 조금은 추잡한 추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완벽한 무 (無) 였다.

손을 뻗어도 그것을 마지못한 척 다정하게 붙잡아줄 그가 없다. 눈물을 흘려도 툴툴대며 닦아줄 그의 투박한 손이 없다. 

주륵. 피터는 어벤져스 구 본부의 채 치워지지 못한 잔해가 가득한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봄 색깔 난방이 먼지에 잠식되어가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양 팔이 쟈니에게 붙들려 있었다는 게 조금은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형. 미쳤어요? 여기가 어디라고 그냥 주저앉아! 진짜 어디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화들짝 놀란 쟈니는 피터를 제 품 안에 끌어당겼고 피터는 죽음 앞에 놓인 거미처럼 힘이 쭉 풀린 채 기대올 뿐이었다. 

토니는 그의 올라간 선글라스를 다시 내렸다. 메마른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표하고 있던 -의외로- 섬세한 갈색 눈이 검은 선글라스에 온전히 가려지게 되자, 피터는 몰려오는 괴리감에 몸을 맡겼다. 그는... 이러지 않았는데. 내가 알던 토니는. 내가 알던 아이언맨은. 

적어도 평일에 작살난 어벤져스 구본부 앞을 사정없이 헤매다 발견한 직장 없는 일반인이 잔해 주위를 떠도는 것을 말리지 않을 정도로 할일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개새끼.”

멀어져가는 토니의 굳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피터는 낮게 중얼거렸다. 쟈니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가는 몸이었지만 심정은 스스로 걸어가는 저쪽이나 이쪽이나 별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다. 

피터는 울고 싶었다. 울어야 했다. 이 빌어먹을 기억이 두개골 사이를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슬퍼해야 했다. 벌써부터 과거의 추억이라는게 손가락 사이를 살그머니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선 더 이상 슬퍼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놈으로 되돌아갈 것이 분명하기에.

그러니까 지금 많이 울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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