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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토니피터] zemblanity 1

zemblanity 

n. 뜻밖의 불행


금요일 아침이었다. 메이 숙모는 아침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 부엌을 지나쳐 곧장 차고로 향하는 피터를 불러세우고 그의 번쩍거리는 새 책가방에 -새 책가방은 그가 전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놀라 바와 사과 하나를 우겨넣었다. 빛바랜 초록색의 사과는 벌레먹은 자국이 만연했으며 지지리도 맛없게 보였다. 입술을 삐죽이며 싫은 티를 픽픽 내는 피터를 꾸짖듯 엉덩이를 가볍게 툭 치고는 숙모는 숙련된 속도로 그의 가방 지퍼를 잠궜다. 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보이다시피 그의 숙모는 그를 과보호하고 통제하는 맛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숙모는 온갖 가방에 서류에 가는 팔이 부러질 정도로 많은 짐을 껴안듯이 이고 있었지만 피터는 달랑 그래놀라 바와 사과 하나, 그리고 노트 몇권과 연필 한 자루 빼곤 텅텅 빈 책가방 하나만을 메고 있을 뿐이었다. 숙모는 차 키를 꺼내 문을 열었고 피터는 새 학교로의 전학 수속을 마쳐 설레기보단 벌써부터 다 닳아버린 기분으로 승용차 뒷자석에 탔다. 앞자리 조수석은 벤 삼촌이 살아있던 적에 주워온 늙은 개가 이미 오래전부터 점령하고 있었기에 피터는 굳이 그놈의 신경을 거스를만 한 행동을 자진해서 하진 않았다. 이빨이 하나도 안 남고 전부 빠져버렸어도 잇몸으로나마 꽉 물고 늘어지면 아팠기 때문이었다. 

몇차례 시동을 걸려 시도하다 포기한 숙모가 여차하면 꺾일지도 모를만큼 세게 키를 박아넣고서야 차의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피터는 백미러를 통해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숙모를 흘끔 보고선 고개를 돌렸다. 숙모의 시선이 더욱 집요해졌지만 피터는 보아도 못 본척, 느껴도 못 느낀척 하는덴 어느새 도수가 되어있었다.

“피터.”

“...”

숙모는 귀끝에 간당간당하게 걸치고 있던 에메랄드 색깔 선글라스를 내렸다. 시선은 그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의 옆에 너무나 안전하게 달랑대고 있는 안전벨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피터는 기 싸움에서 진 것을 인정하고 궁시렁대며 벨트를 매었다. 제가 지금 몇살인데 아직도 안전벨트를 매라 마라 하는건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 학년 또래 대다수는 부모가 나서서 운전 연습을 시켜주는데 그는 뒷자석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이리 불호령이 떨어지니. 

“시간표 챙겼어? 노트는- 필기도구도 다 챙긴거 맞지?”

그녀는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아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차고를 벗어나려 발악을 해대는 낡은 모터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성급하게 차를 빼며 피터에게 물었다. 이래도 끄덕 저래도 끄덕. 피터는 그저 고개만 조금 주억거렸다. 노트도 챙겼고 연필도 챙겼고 시간표도 챙겼어. 다 숙모가 직접 넣어줬던 거잖아. 

메이 숙모는 심각한 안전 운전자였다. 작은 승용차 속에서 새끼 손톱만한 두께로 바람구멍 조금 열린 창문을 통해 시속 사십 킬로미터로 털털거리며 움직이는 세상을 보고 있자면 가끔 미쳐돌아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피터는 당장 가방을 열어 벌레먹은 사과를 꺼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가방을 열어 사과를 손에 쥐는 단계에서 망상은 깨져버릴 수 밖에 없었다. 메이 숙모는 늘 뒷자석 창문에 락을 걸어놓는다.   

꾹 쥐고 있던 터라 미지근해진 사과를 피터는 손 안에서 굴리다 한입 베어물었다. 아사삭, 입에서 뗀 사과는 박아넣었던 그의 잇자국이 선명했다. 맛은, 생각했던 것 만큼 퍼석했다. 

~

언제까지나 혼자서만 굴러갈 것 같던 그들의 작은 바퀴의 곁에 다른 차들이 합세하기 시작하자, 언제까지나 이차선일 것만 같던 도로가 삼차선이 되기 시작하자, 피터는 한껏 안전 운전에 심취해있던 숙모를 급히 불러세웠다. 

“숙모, 숙모. 나 여기서 내려줘요.”

“뭐, 왜? 안돼. 어차피 나도 같이 갈건데 더 타고 가.”

피터는 길가를 흘끔 바라보았다.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피터가 안전벨트를 풀자 숙모는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쥔채로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절대 새 학교의 첫째날 그의 숙모와 함께 등교하고픈, 아니 그러할 심장이 없었다. 그는 백이면 백, 놀림감이 될 것이었다. 

“여기서 내린다고? 애들도 별로 없어. 위험해.” 

“안돼. 안돼요 진짜.”

“오늘부터 니 숙모가 교감선생님이잖아.”

“그래도 오늘만. 오늘만 그냥 나 혼자 갈게. 숙모도 그냥 빨리가요. 처리할 서류같은거도 있을꺼아냐.”

피터가 연갈색 머리칼이 다 희어지도록 칭얼대기 시작하자 숙모는 아니꼬운 어투로 허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하... 오늘만이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피터는 가방을 채들고 차 문에 손을 뻗었지만 메이 숙모가 한발 먼저 락을 걸었다. 제 손끝 아래에서 띠딕 소리를 내며 문이 잠기는 것을 피터는 아랫입술을 꾹 물은채로 바라보았다. 쉬 마려운 개 마냥 성급히 손잡이를 몇차례 당겨보지만 얄짤도 없었다. 피터는 여전히 손잡이를 꾹 잡고 있는 채로 앞좌석에서 몸을 돌려 씨익 웃고 있는 메이 숙모를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꿀꺽. 그의 목구멍에서 마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피터.”

“...”

“뽀뽀 해주고 가야지.”

하아, 피터는 한숨을 쉬었지만 바로 몸을 숙여 그녀의 얼굴에 입술을 문질렀다. 쪽. 아슬아슬하게 입술을 비껴나간 그 뽀뽀는 메이숙모의 하얀 볼을 스쳐지나갔다. 숙모는 락을 풀었고 그 즉시 차문을 벌컥 열고 나간 피터는 입술을 팔소매에 비벼 닦았다. 그의 입가에서 숙모의 향수 냄세가 났다. 달음박질치다 넘어질 뻔하자 그를 향해 크락션을 울리는 숙모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의 숙모가 교감선생님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견딜 심장이 없었다. 

~

아삭. 혀 위에서 조각이 되어 부스러지는 사과를 베어물며 피터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간혹 무거운 짐을 지고 지나치는 다른 학생들이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등교하기 전이었거나 카페테리아에서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아침이나 먹고 있을 터였다. 그런 점은 전 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코너를 돌아 쭉 걸어가니 교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피터는 대충 메고 있던 든 것 없는 가방을 등 뒤에 제대로 위치하였다. 

“안녕, 좋은 아침.”

“굿모닝.”

숨결 밑에서 웅얼거리는 피터를 짧게 훑어보며 교무실의 직원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피터는 고개를 들었고 탁상 앞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남학생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브루넷 머리의 소년은 해봤자 피터와 동갑이거나, 그보다 어릴 것 같이 보였다. 소년은 직원에게 결코 작지 않은 목소리로 짜증을 내었고 직원은 왜인지 그에 쩔쩔매고 있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이사장님께서-

“근데 내가 괜찮다고요. 일 년 쯤 더 꿇어도 괜찮다고요.”

피터는 알게모르게 눈가를 찡그렸다. 내가 들은게 맞는건가. 

“...”

소년은 변성기를 겪고 있는건지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높낮이 없이 짜증을 내는 그의 걸걸한 목소리는 어째선가 피터의 귀를 집중시켰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소년은 소리를 좀 더 죽인 채로 거듭 뭔가를 중얼거리다 팍 소리를 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뒤돌아본 그의 손 한가운데 손가락 하나만이 곧게 뻗어있었다. 마디가 고르고 끝이 뭉툭하게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손가락이었다. 직원과 피터는 서로 다른 이유로 벙찐 얼굴을 한 채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손가락 참 이쁘다.

피터는 그의 손에서 쥐고 있느라 어느새 형체도 없이 뭉게져 전부 끝나버린 사과를 교무실의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손바닥이 끈적거렸다. 

직원이 건네준 락커 번호와 비밀번호 조합이 휘갈겨진 종이쪼가리 하나를 달랑 손가락 사이에 잡은 채로 피터는 다시 복도를 헤매기 시작했다. 몇분 전까지와는 다르게 반대편 복도에서 걸어오는 학생들을 여럿 마주칠 수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다녔을까, 비로소 피터는 제 락커 번호와 맞는 천의 자리 숫자를 가진 락커들을 찾았고, 곧 백의 자리, 십의 자리로 줄어든 락커들의 범위는 1602번, 제 번호에서 멈추었다. 피터는 등에 걸친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자... 보자 먼저 32.” 

중얼거리며 피터는 자물쇠에 손을 대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원은 돌아갔다. 

“..4.”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물쇠를 한 손에 들고 피터는 다시 종이를 꺼내들고 조합의 세번째 수를 찾았다. 쥐고 있던 손에 땀이 났던 것인지 반으로 접힌 종이가 쉽게 펼쳐지지 않아 애를 쓰고 있을 때

“18.”

너무나 잔잔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소년은 답했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그의 뒤에서. 자물쇠에 걸쳐있던 피터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마치 폐장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처럼 삐걱거리며 눈금은 18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딸깍. 

그의 자물쇠가 열렸다.

“..너 뭐야.” 

종이는 바닥에 떨어졌고 직원이 꾹꾹 눌러쓴 마커의 자국으로 뒤집어진 종이의 수들이 어렴풋이 비춰졌다. 32 - 4 - 그리고 18. 피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는 너는 뭔데.”

소년은,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의 갈색빛 진한 눈썹이 언짢음으로 씰룩거리는 것을 피터는 보았다.

“아니 내 자물쇠 번호를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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