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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5


15.


"피터...괜찮니..?"

꺽꺽대며 울고 있는 피터의 울음 소리가 너무 컸는지 메이 숙모가 깜짝 놀라 주방에서부터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숙모의 따스한 두 눈은 순수한 걱정만이 담겨있었다. 스물여덟이나 먹고 아픔에 울 수 밖에 없는게 부끄러워서 무릎사이에 더욱 얼굴만 파고드며 소리를 죽이려고 애쓰는 피터에게로 다가와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새집처럼 일어난 피터의 부스스한 브루넷 머리칼을 가만히, 부드럽게 쓸어준 메이는 너무나 괴로워보였다. 악몽이라도 꾼 것인지 피터의 이마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고 가만히 있는데도 울음 섞인 신음이 훌쩍훌쩍 흘러나왔다. 팔년 전부턴 늘 이런 모습이었다. 너무나 아파하고, 어딘가 부러진 모습. 부숴진 모습. 체중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십 킬로그램 가까이 빠져 걷는 것 조차 위태위태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나마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대학교 또한 갈 상황이 아니라 가끔 나가는 서점 알바 빼곤 딱히 하는 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조카의 이런 가련한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메이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었다. 

"핕, 괜찮을거야. 괜찮아."

메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흥분해 온몸을 작게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는 피터를 안심시켰다. 

"......너무 아파요, 아파, 아..악! 으, 아흐읏.."

울부짖는 피터의 목소리는 고통에 잠겨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흐으, 아...ㅌ토니, 토니이..."

평소엔 토니 스타크라거나 스파이더맨이라거나 어벤져스 같은 말들은 일체 발언도 않던, 마치 모른다는 듯이 신경 쓰지도 않던 피터였지만 아픔에 몸부림치며 바닥까지 떨어질 만큼 떨어졌을 땐 예외 없이 늘 토니의 이름이 나왔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까. 한때는 어벤져스였고, 모두가 사랑하는 스파이더맨이었던 아이가, 한순간에 일반인, 그것도 어딘가 결함이 있는 이로 살아가는 것은. 희망을 버리기에도, 꿈을 접기에도 아직 피터는 너무 어렸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메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피터의 의식은 아직까지 팔년 전에 머물러 있다. 스물 여섯, 누군가는 가족을 맺고 집을 살 나이에 피터는 아직까지 투명하지 못한 기억에 갇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유일하게 시간이란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건 자유가 아니었다. 저주일 뿐이었다.

너무 일찍 날개를 편 새는, 더 빨리 닳아버린다.




"형은 괜찮아요?"

걱정에 가득 잠긴 표정으로 피터의 방에서 나오는 메이를 부엌에서 시리얼을 먹던 쟈니가 불러세웠다. 역시나 매우 걱정된다는 말투로 피터에 대해 묻는 쟈니에겐 묘한 두려움 또한 포착할 수 있었다. 팔년 전, 피터가 사고를 당했던 날부터, 메이와 피터의 아파트에 함께 살게 된 쟈니 스톰은 피터의 사촌이었다. 쟈니가 처음 본 피터의 모습은 어벤져스의 메딕에서 죽은 자 처럼 쓰러져 있던 모습이었고, 물론 피터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던 때에 쟈니를 피터에게 데려온 것이었지만 여덟 살 어린 아이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 후로 부터, 쟈니의 기억 속의 피터는 늘 아프고 약한 모습으로 박히게 되었다. 

"...어때요..?"

메이는 말없이 고개를 젓기만 했다. 쟈니의 얼굴이 굳었다. 형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도울 건데?

피터는 쟈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럴 때엔, 피터의 아랫배의 흉터가 아파올 때엔, 피터는 쟈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평소엔 누구보다도 쟈니에게 잘해주고 사랑해 주는, 귀여워해 주는 좋은 형이지만, 이럴 때엔 쟈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무서워했다. 알지 못했다. 아파서 울부짖을 때에 형은, 집 안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이년 전 메이 숙모의 생신 때 형과 함께 돈을 모아 사 드린 새 냉장고라거나, 형이 정말 애정하던 포크레인 레고라던가, 몇 달 전, 형이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같은 것들은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덜덜 떨며 두려워하던 형의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형?"

반쯤 닫힌 피터의 방문에 머리를 빼꼼 들이밀으며 쟈니가 피터를 나즈막히 불렀다. 과연 형이 저를 기억할 수 있을까. 

"괜찮아..?"

쟈니의 물음에 아랫배를 감싸안고 덜덜 떨던 피터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온몸은 땀에 절어있었다. 자른지 꽤 되어 길게 내려와 눈을 찌르는 암갈색의 앞머리 또한 땀에 젖어 눈가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나 작고, 불쌍한 형. 

"....너..누구야."

피터는 그 와중에도 쟈니가 기억나지 않는지 고개를 들고 잔뜩 긴장한 채로 경계태세를 세웠다. 겁에 질린 초식동물. 

"..미안."

쟈니는 조용히 사과를 하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쟈니가 완전히 방에서 나가, 모습을 감출 때까지 피터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날카롭게 날이 선 시선은 쟈니가 나가는 것을 따라 지켜보았다. 쟈니가 비로소 보이지 않고,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때에서야 피터는 놀라 굳은 근육을 천천히 이완시켰다.

후우...

역시나 기억하지 못한다. 



형이 다른 사람 같아졌을 때엔 한번도 빠짐 없이 늘 옛 어벤져스 본부로 가곤 했다. 쟈니가 형을 처음 봤을 때에만 해도 본부였던 어벤져스 구본부는 몇년 전 외계 빌런들에게 당해 터만 남게 되었다. 끔찍하게 황량한 모습으로.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주위에는 본부 파괴의 잔재들이 남아 텅텅 빈 벌판을 굴러다녔다. 자연스레, 그 곳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곳은, 잊혀졌다. 쟈니는 잊혀지는 것이 참 두려웠다. 아무도 저를 기억해주지 못하는 것은,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죽고 싶을까. 

그 공허한 모습을 보면 형은 늘, 주저앉아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엉엉.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냥 소리내어 울었다. 짐승 같이 본능에 기대 감정을 표호했다. 쟈니가 집에 가자고 다가서면 발작하듯이 울며 반항했다. 마치 아기 같았다. 쟈니가 알던 어른스럽던 형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 그런 형에게 다가가 방향 잃은 주먹을 피하면서 진정시키는 것이. 형이 미쳐버린 것 같았다. 글쎄, 그 부분에서는 지금도 동의를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자의로 미치겠는가. 분명 주위의 환경이 그를 그렇게 몰아가서일 것이다. 형을 처음 만났던 팔년 전부터, 형은 별 변화가 없었지만 쟈니는 저의 참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새삼 느끼고 있었다. 많이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이해심도 커졌고, 무엇보다 무조건 참는 법을 배웠다. 

참아야 한다. 형이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저를 무슨 변태 짐승 보듯이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어벤져스 구본부에 가서 남부끄럽게 울어대어도. 

그렇지만 힘들었다. 특히 형의 그런 모습들을 가족이 아닌 타인이 보게 되었을 땐. 

지금처럼. 



그 남자는 캐쥬얼한 검은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남색의 하얀 땡땡이 넥타이는 캐쥬얼함 속에서도 개성있는 패션센스를 보여주었다. 사십대 후반, 오십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 세계 모두가 아는 사람. 어벤져스의 히어로 아이언맨이자 스타크사의 CEO, 토니 스타크. 그냥 유명한 정도가 아니지. 쟈니와 같이 평범한 일반인은 평생을 들여도 직접 보지 못할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왜, 어떻게...마주칠 수 있는 거지. 뒷모습조차도 유명함이 느껴졌다. 

멈칫,

앞서 빠르게 걷고 있던 형이 발을 멈췄다. 주춤대는 발걸음은 형이 받은 충격과 당황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발을 앞으로 딛을까 뒤로 돌아 도망칠까 고민하고 있었다. 형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형의 오른손은 꼭 모아져 피가 안 통하도록 하얗게 되어 주먹 쥐여 있었다. 

꾹,

앙 다물린 형의 입은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왜일까. 도대체 이상한 형은 왜 이렇게 토니 스타크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형으로선 접점 하나 없는게 정상일 토니 스타크에게. 평범한 덕심이라기엔 많이 이상했다. 형은 아플 때엔 무의식 중으로 토니의 이름을 부른다. 형도 모르는 듯 싶었다. 형은 이상한 형일 때에 형이 한 행동들을 알지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언제부턴가 메이와 쟈니는 형에게 말해주지 않게 되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기에. 언제부턴가 그냥 잊는게 좋겠다 여기게 되었다. 


생각에 잠긴 듯이 폐허가 된 구본부의 터만 말없이 응시하던 토니는 곧 둘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인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살짝, 놀란 기색이 보였다. 아니, 많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게 느껴졌다.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단지 쟈니의 평범한 니트족 형에게. 정상적이지가 않았다. 

"......"

형과 토니는 마주보아 눈을 마주쳤다. 순간,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기류가 서로에게서 통한 것 같았다. 

"...토니."

형이 선뜻 한발을 내딛었다.

"피터."

토니는 걸치고 있던 선글라스를 위로 올렸다. 흔한 갈색눈에는 생경한 감정들이 섞여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움, 미움, 사랑, 미안함, 슬픔...쟈니는 고개를 돌려 형의 표정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형도 토니 스타크와 똑같은 눈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형과 토니 스타크. 지지리도 안 맞았다. 

왜 굳이 저렇게 평범한 우리 형을. 

"..오..지져스. 토니.."

"미친, 피터..?"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형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눈을 비볐다. 그 앞의 토니 스타크는 그저 굳어 있었다.

쟈니를 제외하고 그 곳의 시간은 몇분 간 멈춰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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