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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4






14.


“피터...피터..! 피터가 다쳤다니...그게 무슨..”


쓰러진 토니의 연락을 받고 바로 급하게 친척집에서부터 온 것인지 브루주아들의 파티장에서도 잘 입지 않을 듯한 달라붙는 청녹색의 벡리스드레스와 꽤나 그럴듯한 짝퉁 구찌슈즈를 신은 메이는 피터의 이름만을 애타게 부르며 본부의 메딕에서 분주히 절박하게 피터만을 찾았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상의 강요와 책임감에 의해 선택적으로 솔로일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어벤져스 맴버들에게는 따뜻하고도 가슴 어딘가가 아린, 쓰라린 모습이었다. 가족들의 사랑만큼 감동적이고 소중한 것은 없다. 적어도 브루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를 아껴주고 챙겨주는 가족이 한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었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가족. 그에게는 없던 것이었다. 


"미세스...스파이더맨의 숙모?"

"파커. 파커예요. 메이 파커."


메이는 불안한 시선을 아무데도 고정시키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흐를 것 처럼 눈물이 가득찬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며 답했다. 


"스파이더맨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아니야..설마..”


헉,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메이는 실신할 지경으로 충격을 받아 얼굴이 퍼래졌다. 

피터는 스파이더맨이다. 

그럴리가, 없어. 피터가 그런걸 속일 애는 아니야. 부정하면서도 피터가 스파이더맨 임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근거와 피터의 평소 행동들, 그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말도 안돼. 

메이가 알고 지낸, 믿어왔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피터를 보게 해줘요! 피터를...”


걱정에 울부짖는 메이를 진정시키며 브루스는 병실의 문을 먼저 열어 상황을 살피고 난동치는 메이를 들여보냈다. 피터는 자가소생 중이었고,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피터..."

메이의 눈물로 가득차 뿌옇게 앞조차도 보이지 않는 눈에서 눈물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한줄기, 두 줄기, 세 줄기...수를 더해가며 어느새 메이의 동공은 흘러가는 눈물에 잠식되어 버렸다. 브루스는 쓰러진 토니와, 울부짖는 메이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피터 파커라는 소년은 발작하듯 베놈을 뱉어내며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은. 

이렇게 어릴 줄 몰랐다. 아니, 웬만큼 어리다는 것은 토니나 나타샤의 반응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십대 초중반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묻은 마스크를 걷어낸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듯이 마냥 어린애 같았다. 이마 부근에는 아직도 채 사라지지 않은 여드름이 자리하고 있었고, 턱선은 꽤나 날렵했지만 여전히 젓살이 붙어 애기 같은 모습을 보였다.

브루스는, 적어도 어느 정도 명시는 해 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어벤져스에 넣고, 인피니티워에서 무려 타노스와 싸우게 만들다니. 마냥 어린이라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었고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시키는 것이 현명한 편이라고 생각하던 브루스였지만 솔직히 이건 좀 아니었다. 스파이더맨이 여태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꼬마였다면 어벤져스 맴버들은 그렇게 일을 많이 시키면 안됬던 것이었다. 뒤늦게 죄책감과 현타에 빠진 브루스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토니, 적어도 나이 쯤은 명시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브루스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일어났다.


*


"애기야...애기야...보고싶다."

웨이드는 할 일이 없었다. 지금은 일요일이었고, 보통 일요일엔 웨이드는 집에 가지 않았다. 근 두 달 동안 웨이드의 주말은 항상 스파이디와 함께 였다. 쉬클라도 별 말 안했고, 무엇보다 주말 밤에는 쉬클라가 집에 에시르 여성 섹파를 불렀기 때문에 웨이드도 가봤자 별 쓸모도 없었다. 글쎄, 가끔은 함께 3p도 즐기긴 했지만 요새는 스파이디랑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밌었기 때문에 모르겠다.

웨이드는 손에 들린 치미창가를 필요이상으로 크게 베어물었다. 볼은 빵빵하게 부풀었고 굳게 다물린 입술 밖으로 걸쭉한 소스가 묻은 닭고기가 삐죽 튀어나왔다. 우물우물. 의무적으로 턱을 움직인 웨이드는 곧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지독히도 맛이 없었다. 치미창가가. 

웨이드는 이 부리토 집 별점 테러해 버려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신경질적으로 한 입 더 베어물었다.

퉷. 


*


복부에서의 극심한 통증에 일어난 토니를 반긴 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딸려와 그를 괴롭히는 걱정이었다. 피터에 대한. 피터는 어떻게 된 거지..? 토니에겐 저의 상처보단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상태가 훨씬 중요했다. 왜냐고? 사랑하니까. 다시금 떠올리니 끝없는 상처 뿐이었다. 최근에 저와 피터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계속되었다. 그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상황들이.

"피터. 사랑한다."

입 밖에 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혼잣말보다도 작은 속삭임이라더라도. 여지껏 머리 속에서만 무한히 울려대었던 그 한 마디를 직접 소리내어 말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느낌은, 처음 치곤 꽤나 좋았다. 아니, '꽤나 좋다' 정도가 아니었다. 그 한마디는 토니를 붕 뜨게 만들었다. 마흔 다섯이나 되어 사사로운 연애 감정에 휘말리다니. 

꿈 속에서조차도 피터는 늘 나타나, 토니를 괴롭게 했다. 늘 무시하려 애썼다. 그런 꿈을 꾼 날은, 저 마냥 어리고 떼 없는 소년의 얼굴을 볼 명목이 없으니. 

피터가 저 때문에 어긋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끔찍했다. 피터가 아픔에 점점 익숙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가슴 아팠다. 버림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어린 피터가, 과거의 토니 스타크와 똑같은 루트를 밟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무서웠다.

"왕감자가 될 수 밖엔 없겠군."

그렇담 한번, 세기의 도둑놈이 되어볼까.

미안하군, 메이. 토니는 벌써부터 메이에게 속으로 진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가정 교육을 잘한 건지 조카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


브루스를 괴롭힌 것은 모니터에 뜬 스파이더맨의 몸의 분석 결과였다. 참담했다. 마지막 그 능력 초과의 자가치유 때문인지, 토니의 손이 닿았을 때 일어난 발작 때문인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집을 완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무슨 느낌일까. 슈퍼 히어로가 능력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늘 궁금했다. 물론 브루스는 제발 그 헐크가 사라져 준다면 괜찮다 못해 감사할 지경이었지만 스파이더맨 같이 전성기에 능력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좀 궁금했다.

괴롭겠지. 미쳐버리겠지. 

인생이 완전히 부숴져버리는 느낌일 것이다. 특히 피터 파커란 청년처럼 스파이더맨을 두번째 자신처럼 여기고 완전히 의존하는 자들에게는. 존재 의의가 사라진 느낌이겠지. 

브루스는 과연 일어난 스파이더맨에게 이걸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이럴 때 쓰러져 버린 토니가 너무 야속했다.


*


세상은 늘 피터 파커에게 가혹했다. 어릴적 저를 맡기고 떠나버리신 아버지와 어머니. 든든한 정신적, 육체적 지주셨던 벤 삼촌의 죽음. 그 순간에 함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피터의 숨을 늘 갑갑하게 조여오는 죄책감. 범죄자 수용소에 들어간 연인이자 친구였던 해리와, 스파이더맨의 발목을 잡던 피터 파커란 존재의 나약함 때문에 죽어버린 친구 그웬까지. 

이젠 모두 잊어버리고 싶었다. 

기어이 피터에게서 유일하게 남은 스파이더맨의 능력조차, 최후의 자기방어 수단까지 빼앗아 버리는 세상따위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냥 죽어버리기에는 지독하게 미련이 많이 남은 나머지 억울하단 느낌이 들었다. 왜 나는 항상 을의 입장에만 서게 되는가. 왜 항상 남들에게서 빼앗기기만 하고 직접 뺏어올 순 없는 것인가.

파도처럼 물밀어치는 억울함에 피터의 거의 포기하여 축 감겨있던 눈꺼풀이 떠졌다.

역시, 살고 싶어.





2부. 

- 8년 후.


피터는 집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몰랐다. 오늘은 웨이드를 만나는 날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그냥 눈을 떠보니 집에 있었다. 피터의 방에서, 피터의 침대 위에서. 햇빛은 오랜만에 정말 따스했고, 메이가 뿌려둔 것인지 방안에선 은은한 라벤더 향이 감돌았다. 

꾸르륵.

피터의 뱃속이 허기가 져 요동쳤다. 배고파. 일어나야지. 몸을 일으킨 피터는 훅 들어오는 아픔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아픈 나머지 심하게 일그러진 두 눈가에서 눈물이 한 가닥 주륵 흘렀다. 너무, 너무 아파. 아흐흑. 고통에 피터의 질끈 다물린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아버린 사람에게서나 흐를 만한 서러운 눈물은 멈추지도 않고 자극이라도 받은듯 줄줄 세어나왔다. 훌쩍훌쩍. 어느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피터는 핑크 키티 잠옷 소매로 슥슥 문질러 닦아내었다. 끄윽끄윽. 이제는 소리까지 내며 울어대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어딘가 너무 아팠다. 쓰리고, 답답하고, 너무 허한데, 그게 무엇인지 기억나지가 않았다. 가슴이 계속, 먹먹하고 찌르르 쑤셔왔다. 나, 혹시 심장병인가. 남자가 되어서 아프다고 울고 있는 제가 한심해서 참아보려 애썼지만 그럴 수록 눈물줄기는 더 거세질 뿐이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 야속해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러고 있는 저가 한심해서 괜히 소리까지 내며 울게 되었다.

"아흑, 흐으...아, 으...흐으윽..."

너무나 외로웠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피터를 대책없이 울게 만들고 있는 이 감정을. 마치, 주위의 모든 중력과 시간이, 피터만을 비껴지나간 느낌이었다. 두 눈이 꾹꾹 눌려 아파왔고, 혼자만 붕 뜬 느낌을 늘 피할 수 없었다. 다들 어딘가로 계속 향하고 있는데, 피터만은 계속 출발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늘 그래왔다. 언젠가부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부턴 동창들 모두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하고 심지어 결혼도 하고 애까지 낳은 놈들까지 있는데 피터만은 계속 그 당시의 기억에 매여 있다. 기억나지도 않는 기억에.

모순적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피터 파커의 인생은 크고 작은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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