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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버리다 12

12.


"...상태는 어때?"


어벤져스 새 본부의 메디홀 응급실에서 지독하게도 암울한 표정으로 나오는 토니에게 뒤늦게 스파이더맨이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을 받고 달려온 나타샤가 물었다. 토니의 왼손은 수전증 환자처럼 덜덜덜 떨렸고 반쯤 감긴 눈동자에는 감히 표현하지도 못할 양의 걱정만이 담겨있었다. 토니의 표정이 저 정도라는 것은 상태가 그다지 좋진 않다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기대따위 버리는게 좋았다. 토니는 동료의 죽음에도 늘 냉정한 모습을 보여왔으니까. 

토니는 세상 떠난 듯 깊고도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깨어나만 준다면 감사할 정도야."


절래절래. 고개를 내젓고는 나타샤 또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절대 쉽게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최근 스파이더맨과 함께했던 토니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태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근 이년간 토니는 스파이더맨 한정 엄청난 애정과 관심, 보호를 자처했으니까. 아마 스파이더맨이 토니의 일생에서 가장 사랑받은 자 일지도 몰랐다. 과보호 수준이라 생각들 정도로 토니는 스파이더맨을 보호하고, 보호하고, 또 보호했다. 그렇지만 대놓고 호위한 것이 아니라 뒷전에서 늘 다치지 않게 가드하고, 지켜주었던 것이기에 눈에 잘 띄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타샤 같은 전직 러시아 정부의 숙련된 스파이는 조금만 신경쓰면 캐치해 낼 수 있었다. 근 이년간 둘 사이에 흘렀던 이상한 기류와 감정과, 이제는 절정, 클라이맥스에 달한 둘의 어긋난 관계를. 

답답해서, 밀어주려고, 이어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다시 토니식으로 말하자면 쓸데없는 간섭을 거둬들여야 했는데 그 이유는 스파이더맨이 성적으론 남자였기 때문이었고 관계가 성립되어 봤자 토니에게 돌어오는 것은 서늘한 손목냉증과 묵직한 수갑일 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시빌워 때의 스파이더맨은 굳이 말하자면 스파이더보이에 가까웠다. 목소리도 여자애같고 키도 별로 안 크고 허리랑 손목 발목은 왜 이렇게 가는지. 그 와중에도 거미는 거미인지 뒷모습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거미줄만큼 탄력있어 보이는 그 엉. 덩. 이. 웬만한 여자애들보다도 더 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미줄을 쏘아 능숙하게 적들을 포획하고 쓰러트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스파이더 ‘맨’ 이었다. 


"도대체 왜 데드풀이랑 함께 있었던 거지..?"


스파이더맨의 정확한 실제 나이는 알지 못했지만 예전에 누군가 회의에서 스파이더맨을 정식 어벤져스 맴버로 넣자고 제안했을때 토니가 길길이 날뛰며 절대 안된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성년자거나, 갓 스물이 된 꼬맹이일 확률이 무시할 수 없게 높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데드풀과 알고 지냈다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데드풀이 나쁜 영향을 주면 큰일이었다. 어린 애들은 유행도 더 쉽게 따르고 변화에도 더 빨리 적응하지 않는가. 아직은 모양잡히지 않은 유연한 플라스틱 상태인 스파이더맨을 데드풀 같은자가 건드리게 둘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담 누가 과연 스파이더맨을 건드릴 수 있을까. 전직 스파이와 암살자, 용병, 군인, 빌런들로 가득한 이 이곳에서 때묻지 않고 아픈 손가락, 아픈 과거가 없는 어벤져는 스파이더맨이 유일했다. 


"상태가 심각해서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스파이더맨의 보호자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병실에서 조용히 나온 배너 박사가 얼굴을 찌푸리곤 말했다. 그런데 그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무도, 어쩌면 토니는 몰랐지만 프로필상으론 아무도 스파이더맨의 신원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 보호자를 알리가 없었다. 

토니는 의자에 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보호자가 있을리가. 유일한 가족인 메이 숙모는 지금 뉴욕에 없었다. 스프링필드 -미주리- 에 사는 친척을 보러간다고 했다. 솔직히 그걸 엄연히 보면 남인 토니에게만 알리고, 아들 같은 피터에겐 명시하지 조차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수상하고 이상한 낌새가 있었지만 고작 그런 감으로 남의 집 가정사에 끼어들 순 없는 법이었다. 첫째, 귀찮아져서. 둘째, 귀찮아져서. 셋째, 지지리도 귀찮아져서. 


"...그냥 지금 해. 수술. 쟤 숙모 지금 뉴욕에 없어."


토니는 인상을 좀 더 찌푸리며 거칠게 내뱉었다. 빨리 집행하라는 듯이 손을 까딱이며. 지끈거리는 만성 두통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면 어디에 있는데요? 라는 듯한 걱정스런 눈빛으로 닥터 배너는 토니의 눈치를 살펴 흘끔거렸다. 어디긴 어디야 스프링필드에 있지. 묻지는 마, 나도 몰라. 모른다고. 왜인지는. 진짜 그 정도 밖에 몰라. 


"가족이 더 없나요? 쉽게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닙니다. 와서...좀 봐야 심각한걸 알겠죠, 정말."

"...가족은 숙모 하나야."


토니는 다시 피터가 피투성이가 되어 조용히 눕혀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다. 겁이 났다. 피터가, 그 귀찮은 피터가, 더 이상 저를 따라다니며 귀찮게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압도적인 공포가 되어 토니를 숨막히게 짓눌렀다. 가슴이 먹먹하고, 속이 답답했다. 머리는 깨질듯이 지끈거렸고, 눈가는 꾹꾹 눌리듯이 아파왔다. 심장을 죄여오는 두려움, 그리고 무거운 감정들. 어지러웠다. 소화불량인가. 기록을 달성한다며 치즈버거를 한끼에 열네개나 먹는 멍청한 짓을 했을 때도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다. 

메딕의 흰 침대 시트에 붉은 자욱을 남기며 독사과를 삼킨 백설공주마냥 가지런히 축 눕혀있는 피터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반쯤 찢긴 마스크로 덮힌 피터의 하얀 얼굴은 피를 너무 많이 내보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내려다보는 눈길엔 걱정과 화, 그리고 답답함과 안쓰러움, 측은함, 슬픔이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이 담겨있었다.

Kid,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질구질한 변명이든 뭐든 빠짐없이 다 지껄여봐. 지금 당장."

"......변명이 아닐 수도 있지 않아? 그리고 괜한 걱정마, 스파이디는 짱 쎄니까.."


토니 스타크. 이 개쩌는 최신식 테크놀로지의 도착지인 어벤져스 새본부의 실질적인 물주인 남자가 웨이드를 추궁하였다. 웨이드는 토니의 화를 잠재우려 위트있는 대답을 하려 가뜩이나 안 굴러가는 머리를 과부하 걸릴 정도로 굴러대었지만 결국은 늘 그랬듯이 한심한 웨이드 식의 거짓스런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애가 다쳤어. 죽어가고 있다고. 그런데 넌, 가장 죄책감에 빠져있어야 할 네가, 그렇게 한가한 소리나 하고 앉아있을 수 있다니."


웨이드를 향해 꽂히는 원망과 탓들 '니가 그러면 그렇지' 의 시선들. 솔직히 늘 웨이드가 문제였으니 구차하게 죄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번에도 웨이드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니. 그렇지만 정말, 웨이드는 전두엽이든 후두엽이든 그 중 하나에 먼지가 암세포가 껴있어 후일을 예측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뀌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어, 그래. 그러니까 만약에 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해봐. 시한부인생. 주변을 차례차례 정리하고 있는데 막상 죽을날이 다가오니까 존나 팔팔한거지. 잘 안죽는거야. 이미 재산은 친지에게로 다 돌아갔고 사직서까지 냈는데 너는 아직도 살아있어. 미치겠지? 그래, 좆 같잖아. 내가 매일매일 그런 기분이야. 이 정도 되면 말이야, 살아있는게 살아있는것 같지 않아. 살아있는것 자체가 죄인 느낌. 알던 놈들 중 죽은 놈들도 나오고 옘병 자살한 놈들도 나오고 그러는데 막상 너는 안 죽는거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살아있는데, 완~전 팔팔하게 살아있는데 그냥 죽어야할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인가 나는 자주 자살을 해. 죽음을 느끼고 싶어서.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어땠을지 궁금해서. 라는 damn 철학적인 이유들 그딴거 없고 그냥 심심해서. 할일이 지지리도 없어서.

그렇지만, 늘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용병이 이런 배부른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니 몸값 떨어지고 싶어서 환장했군. 


"염병할. 나도 일부러, 아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씹"

"아니, 잠깐만 잠깐만 워~워...내말좀 더 들어봐.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야 이해한다잖아."


이건 내가 어디에선가 들었던 건데, -아 그래 물론 어떻게 된 일인지도 말할거야- 

그러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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